명쾌해. 한방에 끝냈어. 이는 가히 한 스냅에 셔츠 단추를 풀며 동시에 브라끈을 따는 신의 손(아차차차;;)
...아, 아냐. 어쨌든 진짜 대단하지 않냐?
미셸 푸코랑 주고받은 서신에 마그리트가 이렇게 써 놨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둘 다 동등하게 중요하며 정말 중요한 것은 양자에 의해 환기되는 신비"
뭐 원문은 잘 모른다. 대충 이런 말이라고 하더라-_-
자...그럼 마그리트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생각해보기 위해 다시 그림을 보자.
이건 분명히 파이프의 모양을 그대로 띄고 있어. 파이프의 외관을 아주 그럴듯하게 묘사해 놨지.
근데 작가 자신이 써 놨네? 이건 파이프가 아니라고-_-
그럼 이 "파이프의 외형을 아주 많이 닮은 그림 속의 물건" 은 파이프가 아니라는 거네?
어? 아닌가? 순간 헷갈리네? 그림은 그림일 뿐 이게 실제의 파이프는 아니라는 소리인가?
그럼 이 "파이프를 닮은 것" 의 실체는 뭐야? 어쩌라는 거지? 내가 파이프냐? 아니면 너냐?;;;;
무슨 말인지 알겠어? 마그리트씨는 지금 장난을 치는 거야. 놀자는 거지.
"이게 장난치나..." 의 그 장난 말고, 실체와 그 묘사된 대상, 즉 원본과 복제의 개념을 탈출하며 노는 장난.
원본, 현실 세계의 오브제는 사라지고 우리의 생각은 이제 개념과 철학의 배배꼬인 놀이동산으로 달리는 거야.
파이프는 없어지고 파이프를 닮은 그림과 파이프라는 개념만 남았어. 이것도 복제. 저것도 복제.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어떤 의미에서는 무시무시-_-한 그림이 여기 있네.
이뭐...이차함수 풀던 중딩에게 적분문제 던져주는 느낌?
도식적으로는 미지수를 단지 하나 더 추가한 것 같아 보이는데,
저 왼쪽 위의 괴물체;;와 그림 안의 캔버스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사고유희의 장이 엄청나게 넓어지지.
그림 안의 캔버스 안의 파이프.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그리고 허공에 파이프 하나 더.
그럼 캔버스 안의 파이프는 파이프고 저 두둥실한 건 파이프가 아닌 거니?
"파이프" 라는 단어는 파이프가 아닌 거니? 혹은 이 파이프가 저 파이프는 아니라는 소리일까?
애당초 파이프가 아닌 걸 그린 걸까? 아니면 사실은 실제 파이프가 있고 그 파이프를 그린 복제품인
저 두둥실 덩어리 그림을 또 다시 그림 안의 캔버스에 옮긴 저건 결국 파이프가 아닌가?
그림 안에 있는 건 파이프고 그림 안의 또다른 그림 안에 있는 건 파이프가 아닌 걸지도?
액자 안의 그림과 액자 밖의 덩어리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는 문장.
공허하고 퀭하니 어색한 정적인 공간과 엄청난 가속도가 붙으며 미친 듯 복잡하게 돌아가는 머리.
뭐가 파이프고 뭐가 복제고 뭐가 뻥이야? 이것과 저것의 차이는?
의미와 가정과 짐작이 교차하고 중첩되고 엇나가고 정반대로 뻗다가 끝과 끝에서 만나는 혼란 그 자체!
...좌뇌 우뇌 오버클럭 사시미 한 접시 추가요 베이베-_-
- 잠깐. 잠깐. 너무 흥분한 것 같은데...
- 으, 으응;; 자 잠시 릴랙스...우리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죠.
애초의 파이프 묘사 하나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문장으로 구성된 그림에서 마그리트는
원본과 복제의 상관관계 개념을 파괴하는 공놀이를 시작했어.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 똑똑한 아저씨는
공을 하나 더 던져 놓았지. 하나의 복제를 두 개의 복제로 늘려놓고 "생각해 봐" 라고 대놓고 얘기하고 있단 말야.
공 두 개를 가지고 우리는 미친듯이 저글링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거에 익숙해질 때쯤 되니까
웬 미국산 폭탄머리 또라이;;가 달려와서 복제의 공을 수십개를 더 던져주네. 덕분에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만화경처럼 끝없이 늘어나는 사고유희. 그게 누군지 알겠어?
- 으음...
- 마릴린 먼로, 마릴린 먼로, 마릴린 먼로, 먼로, 먼로, 먼로, 먼로, 먼로, 먼로, 또 먼로, 끝없이 먼로...
캠벨 깡통수프, 캠벨 수프, 캠벨, 캠벨, 캠벨, 캠벨, 캠벨, 캠벨, 또 또 캠벨, 쫘라라락 캠벨...
- 으핫! 앤디워홀! 팝아트! ㅋㅎㅎㅎ
- 뻬이베. 그래. 역시 교양지식이 풍부하셔. 알럽유. 이따가 나가서 바나나우유 사줄께.
자...그럼 다시 아~까 하던 얘기로 돌아와서 요약정리해야겠다.
전통적인 회화 속의 이미지가 모델의 재현이라면, 그 이미지의 "의미" 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겠지?
그래서 서양 고전미술은 그 의미를 해석하는 도상학과 도상해석학이라는 학문이 따로 있을 정도야.
근데 그 단계를 뛰어넘은 그림에서는 이제 이미지가 모델의 재현이 아닌 거지. 원본이 없는 복제.
그러면 이제 그 이미지를 분류하고 의미를 붙이고 고정시킬 기준이 사라져 버리고
복제와 또 다른 복제들끼리의 사고유희만 남는 거야. 전통적인 해석학마저 해체해 버리는 거라고.
덕분에 이미지와 의미들간의 대응관계는 사라지고 자유로운 상상이 열리는 거야.
이건 뭐 노래 가사대로a whole new world! a new fantastic point of view!
이 고전적인 공간과 지시의 관계를 파괴하고 태어난 상상들은 신선하고 창조적이야.
뒤따라오는 새로운 상상을 끝없이 탄생시키잖아.
비둘기가 구름을 품고 나는데 파란 하늘은 중년 신사의 뒷모습이자 잘려나간 커튼.
옷걸이에 걸어놓은 옷이 바로 피부였고 사과 위에 식탁을 올려놓았는데 구두에서 발이 자라나네.
떨어지던 낙엽이 하늘을 품고 새가 되어 다시 날아오르고 연인들은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키스를 나눠.
아무 뜻도 없지만 보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네 상상의 세계에서 또다른 새로운 상상이 피어나잖아. 세상에 원본이라고는 없는 너만의 상상!
이게 마그리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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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 중 푸코 챕터를 읽으면서 내내 이런 상상을 했다.
헤어진 지 1년도 더 된 그 아가씨랑 미술관에 놀러 가서 잘 알지도 못하는 현대미술에 대해
나름 미리 찾아보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느낀 걸 되지도 않는 쇼맨쉽을 섞어가며 열심히 정리해서 얘기해주고,
그애가 웃는 얼굴을 보는 상상. 그러면서 나도 너무 기뻐하는 상상.
둘만의 생각과 느낌을 거리낌없이 공유하며 저녁을 먹고 서로의 술잔을 채워주는 상상.
새로 배우고 새로 경험하는 모든 것을 함께하고 싶은데 벌써 너무 멀어져 버렸구나.
아 몰라. 어쨌든 한국에선 마그리트 전시회가 있었지. 있었다는 것만 안다. 사실 어디서 했는지도 모르지만.
같이 가고 싶었어.